작성일 : 11-01-05 17:15
체르노빌 그후 (프론티어 플라자 과학이야기 1998.7 )
 글쓴이 : 문환구
조회 : 5,630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의 중심가인 끄리샤띠끄 거리에 가면 한국 산을 포함한 값비싼 외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고급 백화점이 그럴듯 하게 들어서 있지만, 타이어바퀴가 달린 전차인 압토부스나 레일위 를 달리는 전철인 뜨람바야를 타고 약간만 밖으로 나오면 소비에트 시절 대규모 실내 집회장으로 쓰였던 자리에 리녹이라는 재래시장 이 열려서 야채와 고기 등 주로 식료품을 냉장고에 넣지도 그렇다 고 어름에 채우지도 않은 채 그냥 팔곤 한다. 바로 옆 공터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려 아주 희귀한 제정러시아나 레닌시대의 골동품이 있는가 하면 그냥 준다고 해도 안 가질 것 같은 신던 구두, 입던 옷 등등을 곳곳에서 흥정하곤 한다.

 

"하하 저건 체르노빌산이야" 주인이 난처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얘기를 꺼내지 않으려는 방문자 의 조심성으로 석 달이나 머무르면서도 불과 4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체르노빌을 입에 담지 않으려 했는데, 뜻밖에 그들은 아무렇지 도 않게 체르노빌을 우스갯거리로 삼곤 한다. 야채나 과일이 눈에 띄게 크거나 작으면 그건 체르노빌산이다. 바람난 마누라가 남편 골 로 가게 하려고 과일가게에 와서 몰래 찾는 물건도 체르노빌 과일 이고....

 

키에프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면서 흐르는 아름다운 드녜쁘르강도 한 쪽 지류가 체르노빌에서 내려 오건만 그 강에서 나온 수돗물을 그냥 먹는다. 하긴 한 달 봉급으로 외국물건 파는 가게에서 파는 에 비앙 생수 열 병 사기도 빠듯한 실정이지만.

 

심지어 정부에서도 체르노빌 발전소 몇 호기중 사고가 나지 않은 발전소는 계속 가동하고 있다. 사고 발전소를 덮어씌운 콘크리트 더 미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미국과 유럽의 우려에도 전력이 모자라 니 어쩌란 말이냐고 대꾸하면서.... 이것도 뭐 바람이 부는 방향 때 문에 답답한 쪽은 오히려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에다 제 일 중요한 마르크를 쥐고 있는 독일이고, 지하수 오염을 걱정해서 각종 연구사업과 나머지 발전소 폐쇄기금 마련에 안달인 나라는 프랑스이니....

 

우리도 처음엔 1kg에 1달라밖에 하지 않는 소고기를 사 먹거나 갑 자기 내리는 비를 할 수 없이 맞게 되었을 때는 비록 사고 10년이 되어 간다지만 찜찜해 하곤 했는데,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소식 을 들을 때쯤 해서는 가랑비를 맞으며 아파트 마당에서 족구를 즐 길 정도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체르노빌이 주는 긴장감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키에프 사람들의 삶을 한 꺼풀만 벗겨 보면 그 누구도 체르 노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외국방송을 통해서 먼저 알게 된 사고소 식과 이에 대한 소비에트정부에 대한 배신감이야 나중에 독립을 하 는데 약간이라도 보탬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가족이나 친척, 친구로 범위를 조금씩 넓혀 나가다 보면 갖가지 아픈 사연이 쌓여 간다.

 

영어통역을 맡았던 아름다운 아가씨 싸샤도 그랬다. 대학을 나온 인 텔리겐챠 부모님 밑에서 키에프 폴리테크닉을 졸업한 싸샤는 방사 능 피폭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아버지와 다리가 부러져서 집에서 쉬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싸샤가 근무하고 있는 회 사 게시판에는 이틀이 멀다 하고 부고가 나 붙는다. 대부분이 50대 의 한창 일할 나이인데 역시 피폭 후유증이다.

사람들은 전에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일을 할 때 아무리 간단한 것 이라도 답답할 정도로 안전규칙을 꼬박꼬박 다 지킨다. 체르노빌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

 

방사능 피폭량이 적거나 낙진에 오염된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다 해도 아이나 노약자들은 갑상선 질환에 잘 걸린다고 한다. 갑상선 질환을 예방하려면 요오드를 많이 섭취해야 하는데 경제난에 허득 이는 정부에서는 아무 대책이 없다. 김이나 미역은 이들에게 없는 음식이고 영양제는 너무 비싸다. 어떤 집에서는 할 수 없이 요오드 가 많이 들어있다는 나무인지 풀을 화분에 키워서는 잘라먹기도 한 다. 하지만 바다 식물도 아닌데 거기에 요오드가 얼마나 들어 있을 까?

 

아이를 둔 부모들은 아이 목이 붓거나 하면 여간 걱정을 하는게 아 니다. 초기 단계에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은 거의 무료지만 그 나마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은데다 결과가 신통찮은지 돈 있는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서 수술하곤 한다. 우리나라가 잘 나갈때는 우 크라이나에 사는 고려인 어린이를 서울에 데려다 무료로 갑상선 수 술을 해주어서 그곳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단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하하 저건 체르노빌산이야" 하는 것 아닐까? (조금 다른 얘기지만)먹는 샘물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