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1-05 17:13
양력의 역사 (한국전력기술 사보 1997.7월호)
 글쓴이 : 문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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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21세기의 시작이 언제인가를 두고 가벼운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21세기 앞으로 xxxx일"이라는 전광판에 써넣은 숫자 때문이었는데, 2001년 1월 1일을 기산점으로 잡지 않고 2000년으로 잘못 계산한데서 비롯되었다. 21세기는 물론이고 기독교문화권에서 중요시하고 있는 천년단위인 밀레니움도 이 날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에 0년이 없고 1년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기원전 10년부터 기원 후 10년까지 살았다면 그는 20년이 아니라 19년을 산 것이 된다.

 

전통적으로 농업과 사냥, 거주지 이전의 주기를 정하는 기준이었고 종교활동을 포함한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중요한 틀이었던 달력은 언어, 종교와 함께 문화권을 구분 짓는 요소이기도 하다. 인류 문명과 그 시작을 함께 해온 달력은 천문관측 기술의 발전보다는 사회적 필요성에 따라 여러 차례 수정과 통합과정을 거쳐왔으며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만 40여 종에 이른다. 이중 서양 기독교문명의 산물인 그레고리력이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 자체의 과학적 우수성보다는 서양문명의 세계지배에 힘 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레고리력의 기원은 고대 로마력으로, 지금은 3월이 된 첫달 마치부터 시작해 역시 지금의 12월이자 당시 열 번째 달이었던 디셈버에 끝나는, 1년이 10개월인 태음력이었다. 고대 로마에서 겨울 두 달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기간으로 아예 무시되었던 것이다. 지금 달력에서 9월에서 12월까지가 라틴어로 7,8,9,10을 나타내는 접두어로 시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중에 로마의 통치자인 폼필리우스가 야누스를 뜻하는 제뉴어리와 정화축제를 나타내는 페브루어리를 뒤에 붙여 12개월 짜리 태음력을 만들었는데 이때까지도 1년의 첫 번째 달은 전쟁의 신을 뜻하는 마치였고 따라서 페브루어리는 12번째 달이었다.

 

이때까지 달력은 태음력이었으므로 한 달의 길이가 번갈아 가며 29일과 30일이어서 1년은 354일이었으나 당시 로마에서는 홀수를 행운의 수라고 여겼기 때문에 하루를 더해서 355일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300년에 플라비우스가 달의 길이도 모두 홀수로 만들어 29일과 31일을 적당히 섞을 때 1년을 홀수로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달인 페브루어리만 28일로 두었고 태양년의 주기에 맞추기 위해 2년마다 20여일씩을 역시 끝 달에 끼워 넣는 윤년을 도입하였다.

 

그러다가 기원전 153년에는 1년의 시작이 춘분인 3월 25일에서 1월 1일로 바뀌었다. 이유는 새 집정관이 임기를 새로 시작하는 날이 이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달이 지금과 같은 순서를 가지게 되었으며 한해의 시작이 천체운동과는 관련이 없는 인위적인 날로 바뀌게 되었다. 그 뒤 기원전 45년에 율리어스 씨저는 1년의 길이를 12달 365일로 하고 4년마다 윤년을 두되 추가하는 하루는 기존의 윤달인 2월에 집어 넣는 율리어스력을 만들었다. 그런데 대신관들이 윤년 삽입법에 익숙하지 못해서 3년마다 한번씩 윤년을 넣는 바람에 또다시 태양년과 차이가 생긴 것을 씨저의 조카인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바로 잡았다. 이전에 라틴어로 5와 6을 뜻하던 달력의 7월과 8월에 이 두 황제의 이름이 들어가 줄라이와 오거스트가 된 것은 이런 기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큰 달이 한 달씩 건너서 있다가 이 두 달에 연속되는 것을 두고 인위적인 조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발굴된 유적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그 이전에도 이 두 달이 연속해서 큰 달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9,10,11,12월에도 숫자대신 황제의 이름을 집어 넣은 적이 있으나 보편화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은 달력에 그들의 기여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4세기초에는 기독교를 승인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달력에 유대전통이었던 요일을 도입한다. 그전까지는 한 달을 Kalends, Nones, Ides라는 불규칙한 기준으로 나누어 왔는데 이때부터 규칙적으로 7일씩 반복되는 요일로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율리어스력에서 지켜지던 영속성의 원리가 이때부터 깨지게 되었으니 그전에는 새달의 시작은 항상 Kalends였으나 이후로는 서로 다른 요일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점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데 매달 첫날이 예컨데 일요일이나 월요일로 시작된다면, 마지막 주는 한 주일을 채우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모든 기념일을 같은 요일에 치를 수 있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토요일이었던 결혼기념일이 수요일이 되는 바람에 야외에서의 멋진 저녁식사를 포기해야 하는 아쉬움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혹시 한 달의 시작을 일요일로 하자는 노동자와 월요일로 해야 한다는 사용자의 주장이 대립하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1년을 365일로 하고 4년마다 하루씩 윤년을 두는 계산은 1태양년의 길이가 365.25일어야 맞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짧은 365.2422일이므로, 계속 윤년을 더하다 보면 400년에 약 3일의 오차가 나고 이만큼 달력이 실제 날보다 늦게 가게 된다. 율리어스력을 사용하던 초기에는 이런 차이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커지게 되고 특히 기독교의 큰 명절인 부활절이 문제가 되었다. 부활절은 태양태음력인 유대달력에 근거해 춘분 뒤 보름날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정한 봄 축제였는데 계속 크리스마스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씨저 당시에 3월 25일이던 춘분은 1582년에는 3월 11일로 14일이나 차이가 났다. 그러자 당시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이 차이를 바로 잡고 이후 다시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달력 수정작업을 하였다.

 

우선 율리어스력과 달라진 날짜를 고치기 위해, 교황선거회의가 처음 열렸던 325년의 춘분이었던 3월 21일에 춘분을 고정시키기로 하고 14일이 아닌 10일만을 달력에 더해서 1582년 10월 4일 다음날을 10월 15일이 되도록 했다. 그러니까 이해에는 생일이 10월 5일부터 14일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생일잔치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 4년마다 윤년을 두되 100의 배수가 되는 해에는 윤년을 넣지 않고 또 100의 배수 중에서도 400의 배수가 되는 해에는 윤년을 두어 몇 천년동안 수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그레고리력을 만들었다.

 

그레고리력은 공표 뒤 로마가톨릭 국가에서는 바로 채택했지만 개신교를 믿는 독일이나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 등은 수백 년의 진통을 겪고 나서 도입했으며, 러시아와 그리스 정교회 국가에서는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받아들였다. 생일잔치뿐만 아니라 결혼기념일, 학력고사 앞으로 100일등의 각종 계획을 다 바꾸어야 하는 달력의 변경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밖에 우리 나라와 중국에서 쓰고 있는 태양태음력인 시헌력, 유태인들이 사용하는 유대력, 이슬람세계의 태음력인 회교력 그리고 태양태음력인 인도 달력 등이 각 문화권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거나 전통축제와 종교행사를 위한 기준으로 그레고리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주요 달력이다.